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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삶의 원리 중 하나는 살아가는 데 별 필요가 없는 걸 가지고 있다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져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데다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는 까닭이다. 세상을 잘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시대가 원하는 걸 재빨리 갖추고, 그러지 않는 걸 빨리 버려야 한다. 변화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많은 생명체가 '쇠(철)'를 몸 속에 갖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방향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우주가 생길 때부터 있었겠지만 동물이 방향을 인식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구에 생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36억년 정도 되는데 지금으로부터 5억4000만여년 전에서야 비로소 방향을 인식하고 방향 감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왜 방향 인식이라는 게 없었을까? 눈이라는 게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눈이 없으니 살아가는 건 운이었다. 이리저리 지나다니다가 먹을 게 걸리면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져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있음의 원리는 좀 더 나은 능력을 만들어 낸 쪽의 손을 들어주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에 의지해야 했던 삶을 확률이 있는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한 생명들이 드디어 5억4000만여년 전 눈을 만들어 냈고 번성의 주역이 됐다. 주인공은 해파리의 조상이었다.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구분하는 원시적인 것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을 것이다. 밝을 때, 그러니까 해가 떠 있을 때는 물 속 깊은 곳으로 갔다가 이 밝음이 사라지면 물 표면 가까이 나올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눈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노리는 포식자를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어서 생존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생존력 획기적으로 높인 눈의 탄생

  눈의 탄생은 단순한 능력이 하나 더해진 게 아니었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눈을 가진 녀석들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으로 곧바로 갈 수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운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당연히 번성할 수밖에 없었고, 세상은 곧 눈을 가진 녀석들과 그러지 못한 녀석들로 나뉘었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변화의 흐름에서 후자는 휩쓸려 사라져 갔다. 짧은 시간 안에 눈은 대부분 동물들의 필수 능력이 됐다.

  혁신이 가진 특성 중의 하나는 혁신이 일반화될수록 경쟁이 이전보다 몇 배나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눈의 탄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보게 된 생명체들의 삶은 곧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되었고, 생과 사는 누가 먼저 보느냐에서 좌우되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더 나은 눈의 진화가 생존의 조건을 좌우하면서 눈은 진화의 아이콘이 됐다. 좋은 눈을 가질수록 생존의 우위를 가질 수 있어 그 시대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삼엽충은 눈다운 눈을 개발한 덕분에 3억년이나 번성할 수 있었따.(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출현한 지 겨우 20만년쯤 됐다!)

  이뿐인가? 곤충은 4억년 전 독자적으로 겹눈을 개발한 덕분에 지금까지 100만종 이상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한 시대를 군림했던 공룡은 최초로 쌍안시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쌍안시란 지금 우리처럼 두 눈이 정면에 있어 시야가 겹치는 것을 말한다. 카메라의 화소가 겹쳐질수록 화질이 선명해지듯 시야가 겹치게 되면 대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거리 또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3차원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눈은 진화의 증거이자 생명체의 핵심 역량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영장류도 새로운 눈을 개발했다.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그것이다. 고양이와 호랑이는 색맹이어서 우리처럼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없고 개는 초록색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장류는 녀석들이 볼 수 없는 빨간색을 볼 수 있다. 빨간색을 인지할수록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자연에 있는 빨간색은 대체로 영양분이 많으면서도 씹기 쉬운 먹이인 경우가 많다. 연한 새싹이나 열매처럼 말이다.



서광원, 이코노미스트 17.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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