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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역사에서 눈이 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까?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여기에는 눈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항상 진화의 증거였고 번성한 생명체의 핵심 역량이었다.

  우리의 뇌에는 방향을 담당하는 두 곳이 있다. 뇌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해마와 그 주변 신경세포가 그곳인데, 각각 내가 지금 어떤 공간, 어느 곳에 있는지와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전자는 우리 몸 곳곳에서 보내는 감각 정보를 모두 모아 일종의 정신적 지도를 만든다. 정보에는 등급이 있어서 눈에서 보내는 신호를 가장 우선하고 그 다음으로 후각, 동작 순으로 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시각을 가장 우선적인 감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3분의 1 가량을 시각중추가 차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렇게 작성된 정보를 토대로 나침반 역할을 하는 후자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판단한다. 이 두 기능이 본능으로 장착돼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올바른 상황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둘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기억이다. 기억이 있어야 어떤 장소, 어떤 상황을 떠올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비교해, 이 곳이 어디이고, 어떤 곳인지 판단할 수 있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몸에 긴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언젠가 와 본 곳인데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면 경계 수위를 낮춘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사망한 이들의 뇌를 보면 왜 기억이 중요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두정엽, 전두엽 피질 같은 부위가 특히 심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기억이 사라지다 보니 이런 사람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당연히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아무 데나 돌아다닌다. 치매 환자들이 외출했다가 집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살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무조건 '나를 따르라' '열심히 하자'고 하는 리더들이 있다. 예전에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갈수록 먹히질 않는다. 아니 강조할수록 다들 슬슬 뒷걸음질치며 머뭇거리거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 안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오래된 본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자기도 모르게 가능성이 더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보여줄 수 없다면 설득력 떨어져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생존의 본질인 이 세 가지를 조직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시각을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보는 걸 믿는다. 조직이 리더의 말보다 행봉에 의미를 더 부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진실에 기반하는 까닭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보여줄 수 없다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왜 모범이 중요하고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한가? 시각적 본능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잭 웰치가 현직에 있을 때 "그런 거대 기업을 효과적으로 잘 이끌어나가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그가 왜 대단한 CEO 였는지 알게 해준다. "딱 하나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GE의 전 구성원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그는 말이 어눌하고 더듬거리기까지 했으며 다소 안하무인이었지만 누구보다 방향 설정 능력이 뛰어난 데다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을 잘 보여준 덕분에, 다시 말해 앞장 서서 잘 이끌어간 덕분에 GE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갈수록 이런 말을 하는 리더가 많아지고 있다.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생존이 엇갈리는 이 시대가 리더들에게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 탐색과 제시에 미흡한 리더일수록 속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방향에서 오로지 '열심히, 더 열심히'라는 속도만을 최선으로 여기고 살아온 탓이다.

  이제 시대는 5억4000만년 전의 세상살이가 그랬듯 더 밝은 눈을 가진 이들이 더 잘 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쪽이 이기는 상황이 됐다. 방향이 있어야 속도가 제 기능을 하고, 조금 늦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빨리'도 중요하지만 '제대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 하자"는 말은 이제 리더가 강조해야 할 말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면 강조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는 시대가 된 까닭이다. 가야 할 곳도 모른 채 일단 달려보자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달리는 만큼 제대로 된 삶에서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는 만큼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광원, 이코노미스트 17.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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